F1 세기의 라이벌, 알랭 프로스트와 아일톤 세나

알랭 프로스트와 아일톤 세나는 F1 역사상 세기의 라이벌로 기록되고 있는 전설적인 드라이버들이다.
F1 세기의 라이벌, 알랭 프로스트와 아일톤 세나

마지막 업데이트: 03 6월, 2019

알랭 프로스트를 논할 때 아일톤 세나를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두 사람은 F1 역사상 세기의 라이벌로 기억된다. 귀를 찌는 듯한 굉음, 레이싱카들끼리의 충돌, 분노와 긴장감이 가득한 F1 트랙에서 세나와 프로스트는 전설을 넘어서 신화가 되었다.

둘의 경쟁 관계는 어린 시절 카트 경주에서부터 시작됐으며 맥라렌 팀에서 동료로 지낼 때 정점을 찍고 세나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결말을 맞았다.

F1 라이벌 관계의 시작

세나와 프로스트는 독일 호켄하임 서킷에서 1984년 봄에 처음 만났다.  가벼운 카트 경기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처음 친근했던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했다.

F1 라이벌 관계의 시작

이미지 출처: grandprix247.com

프로스트는 언론에 세나와 경주 전에는 화기애애하지만, 경주 후에는 피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아마도 프랑스 선수인 프로스트가 경주에서 우승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스트가 맥라렌에서 활약하던 시절, 세나는 톨먼 팀에 들어간 F1 신출내기였다. 노련한 드라이버와 신인의 경쟁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88년 전쟁의 시작

F1에서는 ‘같은 우리에 두 마리 수탉을 넣을 수 없다’라는 말을 하는데 세나와 프로스트가 바로 같은 팀원이면서도 경쟁하는 관계였다.

첫 번째 시즌은 비교적 평화롭게 지나갔는데 세나는 프로스트가 맥라렌 팀에서 몇 시즌째 활약을 펼치고 있을 때쯤 같은 팀에 합류했다.

시즌이 시작되며 선두를 놓고 경쟁을 벌였고 포르투갈 그랑프리에서는 같은 팀원이라는 것을 잊은 것처럼 세나가 프로스트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위험천만한 경기를 펼쳤다. 세나는 우승컵을 거머쥔 후 프로스트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같은 시즌 마지막 경주였던, 일본 그랑프리에서는 두 사람이 우승을 놓고 다퉜는데 F1 역사상 최고의 경주로 기록된 이 경기 초반 뒤처졌던 세나는 폭우를 뚫는 극적인 승부를 펼치며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1989년 챔피언이 된 프로스트

1989년 챔피언이 된 프로스트

이미지 출처: 스튜어트 제거

다음 시즌,  두 드라이버 사이에서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고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프로스트는 세나가 서로를 존중하며 경기하자는 약속을 깼다고 원망했고 두 사람의 사이는 트랙 밖에서도 차츰 벌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대결을 펼친 두 번째 시즌은 첫 번째와 완전히 달랐다. 세나는 무너졌고 프로스트는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일본 그랑프리에서 다시 한번 대결을 펼치게 된다.

프로스트를 제치고 우승하려던 세나는 충돌까지 서슴지 않았지만 실격 처리된다. 반면 세계 챔피언이 된 프로스트는 페라리 팀으로 이적했다.

1990년 세나의 복수

1990년 세나의 복수

1990년 아일톤 세나는 모든 대회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며 경기를 펼쳤지만 프로스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브라질 출신의 세나가 FIA의 갑작스러운 지시로 불리한 출발 지점으로 이동하게 됐다. 세나는 분노했지만 빠르게 출발하여 프로스트와 자갈이 깔린 첫 번째 커브에서 각축을 벌이며 세계 챔피언을 차지했다.

F1 라이벌전의 결말

세나와 프로스트의 라이벌전은 몇 년간 계속되었지만 1993년 알랭 프로스트가 은퇴하면서 둘 사이에 평화가 성립되었다. 프로스트는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수상대 위에서 세나를 안고 농담까지 나눴고 이로써 F1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전은 결말을 맞이한다.

프로스트가 없는 트랙이 전과 다르다고 느낀 세나는 계속해서 연락하고 지냈으며 세나가 비극적인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프로스트는 상파울루까지 와서 관을 들어줬으며 아일턴 세나 재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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