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월드컵 첫 우승국, 우루과이

2019년 12월 22일
1930년 처음 열린 월드컵을 제패한 나라는 다름 아닌 개최국인 우루과이였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우루과이가 축구 강국들을 제치고 영광스러운 월드컵 트로피를 차지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보겠다.

1904년,  FIFA가 창립된 후 축구를 즐기는 국가들은 서로 실력을 겨룰 무대가 마련되기를 바랐다. FIFA 창립 초기에는 국제 대회를 열 만한 조직력이 구축되지 않았지만 20년 후 드디어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을 개최하게 된다.

1928년 암스테르담에서 개최국 선정 회의가 열렸고 작지만, 축구 경험이 많은 우루과이가 개최지로 결정됐다. 당시 우루과이는 월드컵 전용 구장을 건립할 예산도 충분했기에 FIFA는 1930년 7월 13일부터 우루과이 월드컵을 열기로 했다.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스타디움과 참가국

첫 월드컵에 참가한 13개국은 모두 FIFA의 초청을 받았으며 제1회 월드컵만이 역사상 유일하게 예선 없이 진행됐다. 미 대륙 대표로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미국, 멕시코, 파라과이, 페루와 우루과이가 선정됐으며 유럽 대표는 벨기에, 프랑스,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였다. 참가팀들은 4조로 편성됐으며 한 조만 4개국이 경쟁하게 됐다.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스타디움과 참가국

우루과이 월드컵은 3곳에서 진행됐다. 계획대로라면 전용 경기장에서 모든 경기가 열려야 했지만, 폭우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개최일에 완공되지 못했다.

당시 9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던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는 개보수 과정을 거치며 6만 관중으로 수용 규모가 줄었다. 1939년 7월 18일 열린 최초의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페루에 1대 0으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두 번째 스타디움은 ‘그레이트 센트럴 파크’로 수용 인원이 2만 명에서 3만 4천 명으로 늘었다. 1900년에 완공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기장이다.

세 번째 경기장인 ‘포시토스’ 스타디움은 루시엥 로랑이 월드컵 사상 첫 골을 넣은 곳으로 수용 규모가 1,000명이었으며 1940년에 철거됐다.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우루과이 국가대표팀 제1회 월드컵에서 페루, 루마니아와 같은 조였다. 경기장 공사 지연으로 일정보다 닷새 늦어진 첫 번째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접전 끝에 루마니아를 4대 0으로 이겼다.

준결승에서는 유고슬라비아를 만나 1대 0으로 지는 듯했지만 결국 호세 페드로 세아의 해트 트릭 덕분에 6대 0, 압승을 거둔다.

제1회 월드컵 결승전

제1회 월드컵 결승은 1930년 7월 30일 에스타디오 센타나리오에서 열렸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보기 위해 9만 3천 명의 관중이 몰렸으며 그중 1만 5천 명은 아르헨티나에서 일부러 날아온 사람들이었다.

제1회 월드컵 결승전

벨기에 심판인 장 랑게뉘는 안전을 위해 경기 후 즉시 출발할 수 있도록 몬테비데오 항에 배를 준비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전반전은 아르헨티나가 2대 1로 우세했지만, 우루과이가 3골을 더 넣으며 4대 2로 우승을 차지했다. 골을 넣은 선수들은 파블로 도라도, 호세 페드로 세아, 빅토리아노 산토스 이리아르테와 헥토르 카스트로였다.

제1회 월드컵에서 우승한 우루과이는 20년 후 브라질 월드컵에서 2대 1로 다시 한번 영광의 순간을 차지했다.

제1회 월드컵 최다 득점자는 8골을 넣은 아르헨티나의 길레르모 스타빌레였으며 최연소 선수는 브라질의 18세 선수, 카발호 레이테였다. 2010년 10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프란시스코 판초 바라요는 제1회 월드컵에 출전한 마지막 남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였다.

  • Uruguay se ciñe la primera corona mundial (2007) https://es.fifa.com/worldcup/news/uruguay-cine-primera-corona-mundial-50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