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블랙 파워 살루트 사건
올림픽 때마다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하지만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의 블랙 파워 살루트 사건은 여러 면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관련 논란
먼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관련 논란 몇 가지를 짚어보겠다. 멕시코시티는 사실 해발 2천 미터 이상의 고지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경기장 선정이 어려웠다.
또 다른 참가국들의 반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참가가 취소됐는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IOC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따라 비백인의 올림픽 참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멕시코에서는 당시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학살되며 젊은이들이 올림픽 개최를 막으려 했지만, 정부가 제때 제지했다.
블랙 파워 살루트
여러 장애를 극복한 멕시코 정부는 1968년 10월 12일 마침내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지만, 나흘 후 역사에 영원히 남을 평화적인 시위가 열렸다.
남자 200m 육상 경기가 끝나고 세계 기록이 경신됐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상대에 오른 금메달리스트,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리스트, 존 카를로스 그리고 은메달리스트인 호주의 피터 노먼이 미국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동작을 보여준 것이다.
미국의 두 흑인 선수가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검은 장갑을 끼고 빈곤한 동족을 위해 하늘에 주먹질했다.
스미스는 목에 흑인의 긍지를 상징하는 검정 스카프까지 묶었으며 카를로스는 처참하게 폭행당하거나 살해당한 동포를 위해 은색 목걸이를 하고 점퍼를 풀어 헤쳤다.
은메달리스트인 호주의 피터 노먼은 깊게 공감하며 미국 선수들에게 함께 검정 장갑을 끼자고 권했다. 카를로스는 이날 탈의실에서 장갑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블랙 파워 살루트 사건은 현장의 관중들에게 큰 야유를 받았지만 대회 이튿날 전 세계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스미스는 미국인으로서 우승했지만 작은 실수에도 금세 ‘검둥이’라고 무시당하는 현실에 항의한 이번 사건을 미국계 흑인의 긍지를 아는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랙 파워 살루트 사건의 반향
전 세계 매체가 동요한 것처럼 당시 IOC 회장인 에브리 브런디지도 블랙 파워 살루트 사건에 크게 동요하며 이들의 행동을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라고 말했다.
브런디지는 미국 국가대표 선수이자 메달리스트인 스미스와 카를로스를 전혀 예우하지 않고 선수촌에서 추방해버렸다.
이미지 출처: Reddit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귀국한 후 수많은 비난 속에 거의 사회에서 매장되다시피 했으며 살인 협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계속해서 운동선수로 활약하며 은퇴한 뒤에는 미식축구 선수로 뛰기도 했다.
호주의 노먼 선수는 올림픽 위원회의 경고를 받고 귀국했지만, 자국 매체의 조롱을 받아야 했다. 다시는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게 된 노먼은 부상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며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고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노먼의 관은 스미스와 카를로스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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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ith, M. M. (2011). The “revolt of the black athlete”: Tommie Smith and John Carlos’s 1968 black power salute reconsidered. In Myths and Milestones in the History of Sport. https://doi.org/10.1057/97802303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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